국민대학교
2013학년도 영화전공 정시모집 기출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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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보드 구성
아래의 작품을 읽고 24컷 이내의 스토리보드로 구성하시오.
※국민대 홈페이지 입학안내 정시 자료실에 ‘실기고사 예시 문제 및 답안 작성 사례’ 있으니 참고할 것.
열여섯 살쯤 된 남자 아이가 카운터 앞의 빈 의자에 앉았다. 그는 데생을 하다가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워버릴 수도 없는 선이 실수로 그어지듯 대화 속에 불쑥 뛰어드는 도발적인 몇 마디 말을 내뱉었다.
“당신 다리가 멋진데.”하고 그가 말했다.
그녀가 발끈 화를 냈다. “카운터의 나무 칸막이 사이로 들여다보다니!”
“난 당신을 알아요. 거리에서 본 적이 있어요.” 하고 젊은 남자가 설명했다.
그러나 테레사는 그를 멀리하고 다른 손님의 시중을 들었다. 그가 꼬냑을 주문했다. 그녀는 거절했다.
“나도 얼마 전에 열여덟 살이 되었어요.” 하고 젊은 남자는 항변했다.
“그렇다면 신분증을 보여줘요!”
“그건 절대 안 되지.”
“그렇다면 좋아요! 레몬 음료나 마셔요.”
젊은 남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반 시간 가량 지난 후 그는 되돌아와 다시 카운터 앞에 앉았다. 그는 큰 제스처를 썼고 3미터 밖에까지 입에서 술냄새를 풍겼다.
“레몬 음료 한잔.”
“당신은 취했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젊은 남자는 테레사 위쪽 벽에 걸려 있는 간판을 손으로 가리켰다.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는 알코올성 음료를 제공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었습니다.
“내게 술을 주는 것이 금지되었지. 하지만 내가 술에 취할 권리가 없다고는 어디에도 씌어 있지 않아.”하고 그는 손을 크게 내저으며 테레사에게 말했다.
“어디서 그렇게 마셨지요?” 테레사가 물었다.
“요 앞 술집에서.” 그는 큰 소리로 웃으며 다시 레몬 음료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왜 거기에 그대로 있지 않았어요?”
“당신을 보고 싶어서, 당신을 사랑해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도 굳어 있었다.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날 놀리는 걸까? 유혹하려는 걸까? 농담일까? 아니면 단순히 취해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걸까? 그녀는 젊은 남자 앞에 레몬 음료 한 잔을 놓고 다른 손님 쪽으로 갔다.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말이 그의 힘을 고갈시킨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운터 위에 돈을 놓고는 테레사도 모르는 사이에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그가 나가자마자 보드카를 석 잔째 마시고 있던 대머리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 수 없다는 것을 아실 텐데.”
“난 술을 주지 않았어요! 그는 레몬 음료를 마셨어요.”
“당신이 그 레몬 음료 속에 무엇을 부었는지 난 똑똑히 보았소.”
“무슨 말을 꾸며 내는 거예요!”하고 테레사가 소리 쳤다.
“보드카 한 잔 더 주시오” 하고 대머리가 말하더니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난 오래전부터 당신을 눈여겨보고 있었소.”
“그러면 됐지! 아름다운 여자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여기고 입 닥치시오!” 하며 그들의 언쟁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던 커다란 남자가 카운터로 다가오며 끼어들었다.
“당신은 여기에 끼어들지 마시오!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오! 하고 대머리가 악을 썼다.
“그렇다면 당신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 설명 할 수 있소? 하고 키 큰 남자가 말했다.
테레사가 주문했던 보드카를 대머리에게 따라 주었다. 그는 단숨에 마시고 값을 지불한 뒤 나가버렸다.
“고마워요.” 테레사는 키가 큰 사내에게 말했다.
“천만에요.” 하고 말하며 키가 큰 사내도 자리를 떴다.
며칠 후 키가 큰 남자가 다시 바에 나타났다. 그를 보자 테레사는 친구 대하듯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야겠군요. 그 대머리는 자주 오는 손님인데 끔찍할 정도로 불쾌해요.”
“더 이상 생각하지 마세요!”
“그날 왜 내게 해꼬지를 하려 했을까요?”
“그냥 주정뱅이일 뿐이에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다시는 생각하지 않을게요.”
키가 큰 사내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게 약속하세요.”
“약속하지요.”
“당신이 내게 뭔가를 약속하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남자는 그녀의 눈을 여전히 응시하며 말했다.
두 사람은 연애의 상황에 푹 빠져 있었다. 비록 아무런 보장도 없는 이론적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서로 데이트가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행동.
“프라하의 가장 흉한 동네에서 당신 같은 여자와 마주칠 수 있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는 당신은요? 프라하의 가장 흉한 동네에서 뭘하고 있는 거죠?
그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면서 자기를 엔지니어이며 지난 번에는 퇴근길에 아주 우연히 들렀다고 말했다.
그녀는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꽂힌 곳은 눈이 아니라 거기에서 10여 센티미터 위쪽, 다른 여자의 향수 냄새를 풍기는 그의 머리카락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토마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내게 불평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요. 당신이 나 때문에 프라하에 돌아온 후로, 나는 스스로 질투하지 않기로 했지요. 나도 질투하기는 싫지만 억누를 수가 없고 이제는 그럴 힘도 없어요. 제발 날 도와줘요.”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 몇 년 전 두 사람이 종종 산책을 하러 갔던 광장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광장에는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벤치가 있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토마스가 말했다.
“당신을 이해해, 당신이 무얼 원하는지 알아. 내가 다 준비해 두었어. 바오로 산 꼭대기에 올라가 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려는 더럭 겁이 났다.
“바오로 산에요? 뭘 하러요?”
“맨 꼭대기에 올라가면 알게 될 거야.”
그녀는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일지 않았다. 몸에서 너무 힘이 빠져 벤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토마스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었고 쾌활하다고 할 말한 미소를 띠며 있었다. 아마도 그녀에게 어서 가라는 뜻인지 손을 내젓고 있었다.
※출처: 밀란 쿤데라 저, 이재룡 역,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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